여명진 크리스티나 음악감독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아! 말씀드릴게요, 어머니'
아! 말씀드릴게요, 어머니(Ah! vous dirai-je, Maman)’-'12개의 피아노 변주곡' C장조 K.265
음악 칼럼니스트) 여명진 크리스티나
現) 독일 뮌헨 대교구 소속 가톨릭 교회음악가 및 지역 음악감독
유로저널 독일부 기자
20대의 어느 날, 겁 없이 떠나와 시작한 독일살이가 어느새 10년을 넘어섰다. 지금이야 메신저나 영상통화로 어렵지 않게 한국의 지인들과 연락이 가능하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독일 내에서 한국어로 문자 메시지를 전송하는 게 불가능한 때였다. 국제전화카드는 독일생활의 필수품 같은 존재였고, 빠듯한 유학생 살림살이에 한국 유선전화로 500분을 통화할 수 있는 바나나카드를 어느 중국 상점에서 2유로 할인해 판다는 것이 굉장히 귀한 고급정보로 여겨지곤 했었다. 그때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이를 만난다면 풀어놓을 이야깃거리가 잔뜩 있지만, ‘삐삐’가 가끔은 그립다는 누군가의 말에 ‘말괄량이 삐삐’인지 되물어 본 이도 있었으니 더 이상의 추억소환은 이쯤에서 접는 것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생활이 힘들지 않은지 물어보지만, 인간관계에 회의가 느껴질 때도, 쓴 실패를 경험했을 때도, 몸이 아팠을 때도 나름 다 견딜 만했다. 단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한국에 머무는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한국과 독일의 물리적 거리를 체감 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이동제한, 자가격리 등에 발이 묶여 어머니의 부고에도 한국에 가지 못했다는 한 커뮤니티의 글이 쉽사리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것도 그 안타까움에 지극히 공감하는 심리적 유대감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타지생활에서 가족이 가지는 의미, 특히 ‘어머니’가 가지는 존재감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다.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아! 말씀드릴게요, 어머니(Ah! vous dirai-je, Maman)’ 주제에 의한
'12개의 피아노 변주곡' C장조 K.265 *
모차르트가 유럽 순회 연주 도중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도 부모님에게만 보일 수 있는 응석과 투정이 잔뜩 묻어난다.
“오늘은 편지를 길게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끝도 없이 레치타티보를 작곡하느라 무리를 했는지 손가락이 아파요.”
열다섯 살의 나이에 ‘거장’이라는 격찬을 들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도 어머니 앞에선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 아버지와 나눠 쓰느라 잠을 잘 못 잤다’고 어리광부리는 평범한 아들이었던 것이다.
‘반짝반짝 작은 별’ 동요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 곡의 테마는 ‘아! 말씀드릴게요, 어머니’라는 제목의 프랑스 민요이다. 구전되어 전해지던 이 노래는 1774년 브뤼셀에서 출판된 ‘순진한 비밀’ 이라는 제목의 책에 처음으로 가사와 함께 실렸다. 어느 소녀가 한 남자에게 반해 마음앓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털어놓는 가사이다. 모차르트는 1778년 파리로 연주여행을 갔을 때 이 노래를 접하고 그 멜로디를 이용해 12개의 피아노 변주곡을 작곡했다.
단조로 연주되는 제8변주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곡이다.
제2변주의 왼손 반주에서 나타나는 모차르트 특유의 16분 음표 모티브를 듣고 있노라면 재잘재잘 연주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쏟아내는 모차르트와 그런 모차르트가 대견하고 귀여워 열심히 맞장구 쳐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12개의 변주 안에서 때로는 과장스럽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어머니 앞에서 무용담을 늘어놓고, 가끔은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하는 연주여행의 힘겨움을 털어놓는 아들로서의 모차르트가 떠오르는 곡이다.
모차르트가 바쁜 연주여행 일정 중에도 편지로 어머니에게 일상을 공유했듯, 삶에서 언제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내 편’이 있다는 것은 참 힘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행운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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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ailytoday.co.kr/news/view.php?idx=39417기사등록 2020-09-13 14:3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