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니스트 여명진 크리스티나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음악 이야기 <1>: 프란츠 슈베르트, '음악에게'
음악 칼럼니스트 여명진 크리스티나
現) 독일 뮌헨 대교구 소속 가톨릭 교회음악가 및 지역 음악감독
-유로저널 독일부 기자
-음악 칼럼니스트
모두가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쓰지만 어디선가 불쑥불쑥 고약한 얼굴을 들이미는 바이러스 때문에 좀처럼 속도가 붙질 않는다. 끝이 가늠되지 않는 길 위에서 정신적 피로도는 높아지고 조금씩 지쳐간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관계의 단절과 사회적 고립을 가져왔고, 그 위세 앞에 가려졌던 많은 것들이 민낯을 드러냈다. 자유, 생명, 신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보편적 가치의 기준이 저울질 당했고 각자가 지닌 서로 다른 무게감이 균열을 일으켰다. 그 갈라진 틈 사이를 비집고 바이러스 자체보다 공격적이고 깊은 생채기를 남기는 차별과 혐오가 자라난다.
언제부턴가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서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게 된 것처럼, “Miss Corona!", "칭, 챙, 총”.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 역시 일상이 되어버렸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낯선 이들은 베를린의 한 한국인 유학생 부부에게도 이유 없는 비웃음과 조롱을 쏟아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언어폭력과 성희롱에 상처 입은 부부의 사연은 한국 매스컴에서도 크게 보도가 되었고, 현지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 유력 일간지에서는 신문 전면을 할애해 “Bei aller Liebe (모든 사랑으로)” 라는 제목으로 그들이 겪은 인종차별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신문 전면의 한 가운데를 차지한 부부의 사진과 붉은색 바탕의 ‘모든 사랑으로’ 라는 문구에 위로를 받은 걸까? 굳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어도, 이방인으로서 타지에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겪었던 원인 모를 억눌림이 스쳤다. 눈치 주는 이도 없는데, 괜히 눈치가 보이고, 조롱과 차별 앞에서 괜히 문제를 만들기 싫어 쓴소리를 삼켰던 모습들이 지나갔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할퀴어졌던 상처 자리가 새삼 욱신거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모든 사랑으로”
거칠고 치열한 삶 앞에 음악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종이 위에 흩뿌려진 콩나물 대가리 음표들은 그 자체로 어떠한 힘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음표가 악기를 통해 연주되고, 누군가의 목소리로 불리워질 때 음악은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선율과 마음이 만나 위로를 건네고, 불합리함에 맞설 힘을 전하며, 세상이 할퀴고 간 상처의 자리를 매 만진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음악에게' An die Musik D.547
슈베르트 역시 음악가로서 비슷한 고민을 했었나 보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인생의 무게를 오롯이 홀로 짊어진 그에게 위로를 건넨 것은 ‘음악’이었다. 고독한 걸음에 사랑의 온기를 더하고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꿈꾸게 한 원동력이 바로 ‘음악’이었던 것이다.
“그대 고귀한 예술이여 / 세상이 어둠에 잠기고 / 거친 삶의 올가미가 나를 옥죄일 때면 / 그대 나의 마음에 따스한 사랑을 불 지피고 /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나를 이끄네 / 이따금 그대의 하프 선율을 타고 한숨이 새어 나오고 / 그대는 달콤하고 성스러운 화음으로 / 보다 나은 시절의 하늘을 내게 열어주네 / 고귀한 예술이여, 그대에게 감사를”
1817년 슈베르트가 20세 청년 시절 작곡한 곡으로 친구 프란츠 쇼버의 시에 곡을 붙였다.
10년 후인 1827년 4월 27일 슈베르트는 이 곡을 오스트리아 빈의 피아니스트 알베르트 쇼빈스키에게 헌정한다.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기본에 충실하게 꽉 찬 화성은 마치 슈베르트의 마음 같다.
담담하게 8분 음표가 이어지고 그 위를 소박하지만 온 마음을 담은 진심 어린 선율이 한걸음 한걸음 발자국을 남긴다.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은 누군가 용기 내어 내디딘 한 걸음의 발자국이 만든다. 그 발자국이 늘어날수록 현실과 이상향의 간극은 좁아질 것이고, 그 흔적을 따라 걷는 이들이 늘어나면 그 자리엔 새로운 길이 날 것이다.
다음 2편에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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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ailytoday.co.kr/news/view.php?idx=37855기사등록 2020-07-31 15:0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