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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의 클래식 칼럼]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전하는 평화의 선율
  • 기사등록 2020-06-17 17:18:42
  • 기사수정 2020-06-17 17: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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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6월에 전하는 평화의 선율


세상 모든 분열의 자리에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질 평화의 날을 고대하며


음악 칼럼니스트 여명진 크리스티나

現) 독일 뮌헨 대교구 소속 가톨릭 교회음악가 및 지역 음악감독

-유로저널 독일부 기자

-음악 칼럼니스트


싱그러운 푸르름이 세상을 수놓고, 여름빛 춤사위 가득한 6. 우리가 발 디딘 이 땅의 6월은 그 찬란함에 닿아보지 못한 수많은 넋에 빚을 지고 맞이하는 나날이다. 한국의 625 전쟁,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 히틀러의 바르바로사 작전. 이 모든 전쟁이 6월에 시작되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총성, 사방으로 튀어 날리는 포탄 파편, 매캐한 화약 냄새로 6월의 초록빛은 자주 얼룩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테러, 학살, 내전으로 서로 대립하는 분쟁지역이 적지 않다. 그 무너진 자리에도 언젠가 평화의 꽃이 피고, 평화의 선율이 울려 퍼지기를. 그리하여 쓰라린 흉터조차 남기지 못한 채 흙이 되어버린 수많은 넋이 위로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6월이다.


▲ (사진=최병관, 녹슨 철모 사이에 핀 꽃송이)


*김연웅의 시 옥토

" 그때의 유월, / 아지랑이 환영 속에 당신의 뒷모습 무엇 하나 남기지 않은, / 남길 수 없었던 지옥 같은 화염 속에 온 몸을 던진, 조국에 던진, / 겨레에 던진 그랬던 당신은 쓰라렸던 흉터조차 남기지 못했습니다. / 그렇게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되셨습니다. / 검은 흙이 되셨습니다. 옥토가 되셨습니다. / 보이십니까, 비명 속에도 당당히 생을 마감한 당신의 육신으로 /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이 되었습니다. / 느껴지십니까, 당신이 지킨 이곳의 한가운데 그 때의 온기와 땀내음이 묻어 있습니다. / 들리십니까, 이곳에서 자라난 푸른 초록 속엔 당신의 숨소리가 메아리로 퍼집니다. / 오늘도 하늘을 향한 어린싹이 돋아납니다. / 그 싹을 틔우는 흙 한 줌 이 한 줌도 허투루 할 수 없습니다. / 땅 위의 작은 모든 생명들 무엇 하나 애틋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지금껏 수십 년 세월 동안 이 흙 속에서 숨 쉬고 계실 당신 / 차마 다 남기시지 못한 말씀은 끝없이 이어질 이 땅에서 말씀해 주십시오. / 옥토에서 외쳐주십시오. / 다 듣지 못했던 한 어린 수많은 이야기들 마음속에 고이고이 여미려 합니다. / 붉은 황혼 속 대지의 넘치는 뜨거움을 가슴으로 부둥켜안으려 합니다. / 나에게 깨우침을 주신 당신이여! / 남은 자들을 위해 또 다른 미래가 솟구칠 이 기름진 옥토에 계시는 당신이여! / 영겁의 영광과 번영 속에 우리와 함께하소서 우리와 같이 누리소서 / 고요한 아침 속에, 그 평화 누리소서 "


현충일 60회 추념식 행사에서 배우 현빈이 추모 헌시 옥토를 낭송했다. 그 음성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주름진 얼굴들을 보고 있노라니, 지나간 전쟁의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윤이상의 오보에, 하프, 관현악을 위한 이중 협주곡, ‘견우와 직녀 이야기’ (1976)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은 분단의 역사를 경험한 두 나라 한국과 독일에서 활동했다. 그는 늘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 대해 마음 아파했고, 평화와 통일에 대한 소망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또 한국 전통악기를 사용하거나 묘사하고, 한국의 선율이나 이야기를 담는 등 작품 안에 한국적 색깔을 진하게 녹여냈다. 한민족의 역사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1986, 1987),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1981) 와 같은 곡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윤이상은 독일 하노버와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1988년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 훈장을 받는 등 독일 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현대음악 작곡가이다. 그가 작곡한 오보에 독주곡 피리는 독일 내 많은 오보에 전공 학생들이 입시 곡이나 졸업연주 곡으로 선택하고 있다. 오보에, 하프, 관현악을 위한 이중 협주곡은 1977926일 베를린 도이체오퍼 오케스트라와 오보에 연주자 하인츠 홀리거, 그의 부인이자 하프 연주자인 우줄라 홀리거의 협연으로 초연되었다. 갈라진 남북의 현실을 견우와 직녀 이야기에 빗대어 애틋함을 표현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채 만날 수 없는 이산가족 아픔은 칠월칠석날 오작교 위에서 찰나의 만남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움에 비하지 못할 것이다. 악보 자체에는 견우와 직녀를 나타내는 어떤 기보도 없지만, 오보에로 소를 치던 목동 견우의 피리소리를 연주하고, 현이 가장 많은 악기 하프로 베를 짜던 직녀를 그려냈으니 이보다 더 알맞은 악기 선택이 있을까 싶다.


▲ (사진=윤이상 평화재단 홈페이지 전재, 베를린 필하모니 캄머무직홀,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


한국에서는 1982년 프랜시스 트래비스의 지휘 아래 KBS 교향악단과 하인츠 홀리거, 우줄라 홀리거의 독주로 초연되었다. 1989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 날,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그 역사적 순간을 두 눈에 담았을 윤이상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얼싸안고 자유와 평화를 만끽하는 그들이 사무치게 부러웠을 것이고,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이 안타까웠을 것이고,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으로 더이상 닿을 수 없게 된 고향 풍경이 그리워 통탄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어쩌면 견우는 작곡가 윤이상 본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교향곡 제9합창’. Symphony No.9 in d-minor, op.125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한달 뒤 19891225일 영국, 미국, 소련, 프랑스, 동독과 서독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 아래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기념하는 역사적인 연주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선택된 곡이 바로 베토벤 교향곡 9합창이다.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는 베토벤의 삶은 끊임없는 고뇌와 방황으로 굴곡진 길이었다. 가난과 질병, 고독에 오롯이 맞서야 했던 그는 음악을 통해 자유, 평화, 화합, 인간다움을 갈구했다. 청력을 잃고 지독한 좌절을 겪지만 주저앉거나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고 그 세월을 혹독히 견뎌내고 장엄한 화합의 선율 합창 교향곡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4악장 '환희의 송가는 평화와 희망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다. 1985년 유럽연합 공식 찬가로도 지정되었다. 모든 회원국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 자유’, ‘평화’, ‘결속을 통한 단결을 표현하는 대표곡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 (Ode an die Freude)’가 교향곡 94악장의 가사로 쓰였다.

"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광채여 / 낙원의 딸들이여 / 그 빛에 이끌려 거룩한 성소로 들어가자 / 시대가 갈라놓은 이곳 / 신비로운 그대 힘으로 다시 하나가 되고 / 그대의 고요한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서 /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라 /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가 되는 / 원대한 꿈을 이룬 자여 / 사랑스러운 여인을 얻은 자여 / 모두 함께 환호하라! / (중략) / 이 세상 모든 존재여 / 자연의 품에서 환희를 마시라 / 모든 선한 사람과 모든 악한 사람 / 장미 꽃길 걸어가고 / (중략) / 태양이 장엄한 창공의 운행을 따르듯 / 형제여, 승리의 영웅처럼 그대의 길을 나아가라 / 백만 사람들아, 서로 포옹하라! / 이 입맞춤은 온 세상을 위한 것이니! / 별이 수놓은 하늘 위에는 /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계시네 / (중략) / 별이 빛나는 하늘 그 위에서 그를 찾으라! / 그 별들 너머에 창조주 계시리라. "


▲ 구스타브 클림트, 1901, <베토벤 프리즈>, 오스트리아 빈 제체시온 미술관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을 주제로 행복과 환희의 색채가 넘치는 작품 베토벤 프리즈를 그려냈다.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여인들과 세상을 위한 입맞춤과 포옹을 나누는 연인. 그들을 감싸 안은 금빛 찬란함이 화합과 일치의 순간 다가올 감동과 벅참의 강렬한 빛깔 같다. 베토벤의 음악은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살아 숨쉬고 있다. 그의 음악 안에 담긴 인류를 향한 사랑에 새삼 감동하고, 자유와 화합을 추구하는 평화의 가치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차별, 혐오, 분열, 다툼, 전쟁의 시작은 꺾이고 상한 마음 한 조각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딛고 자라나는 포용과 일치, 평화를 지키려는 의지 역시, 마음 한켠 담아둔 사랑 한 조각에서 시작될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 심게 하소서 / , 거룩하신 주님 /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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